티스토리 뷰

영순군 부(광평대군의 아들)가 예(例)를 정하며, 조변안과 조지가 한자에 동국정운에 따른 운을 적고 신미와 사지, 학열, 학조 스님이 잘못된 번역을 고치면 최종적으로 세조가 보고 난 후 조두대가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 《능엄경언해》 권10 어제(御製) 발문 중에서 세조 사후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는 한자를 몰랐는 데 정희왕후 측근에서 한자를 한글로 해석해주는 일도 했슴 그 때 당시의 실세

만든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함 이어 계유정난 후 왕이 된 세조의 간경도감에서 불교언해사업에도 함께 참여했슴 “상(세조)이 한문에 토를 달고 혜각존자 신미대사가 토를 단 문장을 확인하면, 수빈 한씨(후에 인수대비)가 소리 내어 읽으며 교정하고 한계희, 김수온이 그것을 들으며 번역하여 적는다. 박건, 윤필상, 노사신, 정효상 등이 번역된 문장을 서로 고찰해보고

조선 초기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고 알려지고 정희왕후, 인수대비 두 대비를 모셨던 궁녀 조두대 (조선판 최순실) 조선 초기 궁녀들 중에서 젤 많이 권력을 행사했다고 알려졌슴 본래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의 노비였슴 세종은 일찍 죽은 광평대군에 대한 측은지심에 그가 남긴 핏줄인 영순군을 궁으로 불러들여 돌보게 함 그래서 광평대군집 노비인 조두대는 영순군을 모시기 위해 입궁을 하게 됨 조두대는 그 때 당시에 글을 모르던 여인들 중에서 흔치 않게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한자까지 다 알고 있어서 세종의 한글창제에도 기여하고 한글을 궁서체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