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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답을 못할까? 가정1. 정말로 조민이 발급 받은 경우 -> 서울대병원장은 "조민의 것이 맞다" 하면 다 끝나버림 이 대답은 개인정보가 공개 되는게 아님. 왜? 이미 조민이 10월1일 날짜의 진단서를 서울대에 제출했음이 밝혀짐 조민의 것이 맞다면 조민이 발급받은거라고 답하면 더 파고들게 없이 곽상도 아가리 닫게 할 수 있는데, 대답을 못한다? 가정2. 그렇다면 조민이 아닌 다른 환자가 발급 받은 경우 -> 조민의 것이 '아니다' 라고 대답해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음. 왜? 어떤 환자에 관한 어떤 병명에



대충 가장 그럴듯한 대결을 대표로 뽑아왔습니다. 큰 추세는 안바뀝니다. 현재 28곳 중 민주당 14곳 한국당 12곳 무소속 2곳 입니다. 무소속은 자유한국당 계열입니다. 즉 14대 14입니다. 물론 대구 경북이 많이 조사되어서 그런겁니다~ 지역 20대 당선자 1위 2위 서울 서대문구 갑 우상호 (3선) 우상호 (민) 이성헌 (자) 경기 평택시 갑 원유철 (5선) 한국당 민주당 경기 평택시





이와 관련해 유족들은 "한국당 의원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고인을 '골수 친일파', '친일 행각을 벌인 자'라고 말해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며 "고인은 국가 기구 및 단체에서 만든 친일파 명단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PICK 안내 [단독]송병기 업무수첩에 ‘산재母병원→좌초되면 좋음’ 신문 A12면 1단 기사입력 2019.12.18. 오전 3:03 최종수정 2019.12.18. 오전 9:05 기사원문 스크랩 본문듣기 설정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1,999 댓글 315 요약봇 beta 글자





해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나마 4차례 참석 확인란에 적힌 서명 필체도 같지 않아 대리 출석 의혹도 있다고 곽 의원 측은 밝혔다. 검찰은 조 장관 아들이 부실 활동을 하고도 증명서를 발급받은 의혹을 파헤치고자 시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청소년 사업의 대부분을 청소년 단체나 연맹에





~ 2015년 12월 1일 김수남 2015년 12월 02일 ~ 2017년 05월 14일 2014년 7월 당시 법무부 장관은 여전히 황교안이었고, 민정수석은 김영한, 검찰총장은 김진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병우가 등장합니다. 우병우는 김영한 민정수석보다 청와대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즉 1차 무마 시기에 곽상도 민정수석이 한동훈 검사를 민정비서관으로 뽑은 것과 다른 것이죠. 또한 우병우는 검사를 퇴직 후 변호사를 하다가 청와대로 입성한 경우입니다. 김영한 민정수석은 비도덕적인 사건이라 막 묻지를 못했던 듯 하고 사건 처리를 빠르게 못한다고 정권 핵심부가 판단한 것





2.수색하다가 범위 밖의 것을 하려면 철수 하고 추가 영장 받아서 해야 한다 3.추가 영장 나올때까지 죽치고 시간 때우는건 잘못이다 철수 해야 하는데 안하고 죽치고 앉았는건 공권력 남용이다~ 현재 나경원과 그 일당들 표정이 궁금합니다. 특히 주광덕!, 곽상도, 김진표요 잡것들 우리 조국님은 울고 계실듯 감격스러워 홍문종 의정부시을 조원진 대구달서구 병 만약 1. 저 둘이 우리공화당 비례로 나온다면? 2. 홍문종이 비례, 조원진이 지역구로



장관, 곽상도 민정수석이고, 한동훈 민정비서관도 역할을 했을 겁니다. 사건이 2차로 불거진 건, 다음해인 2014년 7월입니다. 김학의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는 진술을 하는 A씨가 나타난 겁니다. 여기서 2차 시기와 관련된 주요 인물의 재임 기간을 봅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재임 시기 2013년 3월 11일 ~ 2015년 6월 13일 민정수석 김영한 2014년 6월 12일 ~ 2015년 1월 10일 우병우 2015년 1월 26일 ~ 2016년 10월 30일 검찰총장 김진태 2013년 12월 2일



힘에 부쳤나 봅니다. 다음날인 5월 10일에도 시위가 벌어졌으나 서울의 경우 훨씬 적은 몇천 명이 거리를 점거하였으며, 며칠 이어진 도심 시위는 그렇게 사그라들었습니다. 공안 정국은 강약은 있었지만 계속 이어졌고, 그해 10월 13일에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공안 정국으로 허술해진) 민생치안을 위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건 곁가지였고 주 표적은 노태우 정권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애초에 윤석양 이병의 폭로를 뭉개려는 수작이었으니까요. 선포 후 시위 진압 방식도 달라졌는데, 그 전까지도 집회와 시위가 있으면 전경과 백골단을 동원하여 깨버리고 참가자들을 연행했으며,





4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임명됩니다. 김학의 별장 사건을 덮기 위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실제 역할을 하되, 이걸 지휘한 건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입니다. 한동훈은 이 때 민정수석이 뽑은 민정비서관이었으니 상당한 역할을 했을 여지가 큽니다. 김학의 별장 사건을 덮기 위해 곽상도를 민정수석에 황교안이 천거하고 곽상도는 민정수석이 되기 전에 자신이 할 일이 이 사건을



사이에 2회는 37명(0.98%), 3회 12명(0.32%), 4회 7명(0.19%), 5회 8명(0.21%)이었다. 6회 이상 연속 수령자 11명 가운데 조씨를 비롯해 장학회에서 학생을 지정한 경우는 모두 3명인데 조씨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성적 우수자였다. 11명 가운데 다른 8명은 학교에서 장학회에 추천하거나 학교에서 선발한 경우로 가계 곤란자(5명), 과 대표 등에게 주는 총대 장학금(2명), 성적 우수(1명) 등이었다. 조민 장학금 2017년부터 잡음…노환중, 동료 교수와 다툼도 조씨는 입학 연도인 2015년 1학기(세 과목 낙제, 평점 평균 미달), 2018년 2학기(한 과목 낙제)에 각각 유급을 당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학기당 200만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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